암흑동화도 장편보다 단편으로 나오는게 더 재밌었지 않나 싶다. 책의 대부분이 주인공이 왼쪽 눈에서 본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주변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인물들의 상실에 붙잡혀 있는 쓸쓸한 모습에 대한 서술이다. 범인을 찾는 요소는 후반에 약간 나오고 반전요소도 거기서 살짝 나올 뿐이다. 단지 잔인한거 싫어하면 암흑동화가 더 읽기 편할듯도 싶다.
제목이 암흑동화라 그런지 비현실적인 설정이 난무한다.
주인공은 [나미]라는 소녀이다.
그녀는 눈오는 어느날, 실수로 우산에 눈을 깊게 찔리고 그 충격으로 기억상실에 걸린다.
모두에게 인기있는 활발하고 상냥하며 뭐든지 잘하던 팔방미인 [나미]. 하지만 기억을 잃은 후 말을 잃고 잘하던 피아노도 못치고 무능력한 아이가 된다. 전과 다른 행동을 취하는 나미에게 주변 친구들은 점점 실망했다며 떠나가고, 부모마저도 저 애는 내딸이 아니라며 매도를 당할때가 많아졌다.
나라는 한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그것을 기억이라고 본다. 지금의 나를 형성해 온 과거의 경험과 추억들이 [나] 라는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나미는 그렇게 뭐든지 잘하고 인기있는 인싸소녀였지만, 기억상실로 인해 소극적이고 말도 없는 아싸소녀가 되어버렸다. 주변 인물들은 그런 나미를 타박한다. 너 그런애가 아니었잖아 라며. 지금의 나미가 아닌 기억나지도 않는 과거의 나미의 이야기만을 하며, 친구들도 무려 부모까지 지금의 나미를 계속해서 부정한다. 그녀는 그들이 말하는 [나미]라는 존재는 자기와는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들이 바라는 인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절망해서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워 할아버지는 없어진 왼쪽 눈의 장기이식을 해준다.
불법적으로 손에 들어온 왼쪽 안구. 안구이식 이후 나미에게는 누군가의 환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몇번이나 계속된 백일몽 속에서, 그 풍경이 그 [안구의 주인이 본 풍경] 이라는것을 알게 된다. [가즈야] 라는 남자가 죽을때까지 본 풍경. 안에 아무것도 없었던 텅 빈 나미에게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 되고, 카즈야가 본 풍경이 마치 자신이 본 풍경이며 기억이라고 느껴진다. 인생의 유일한 낙이 그 카즈야의 풍경을 보는 것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납치된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본 카즈야가 범인에게 도망치다 차에 치여 버린 다는것을 보게 된다. 나미는 카즈야가 꿈이 아니라 현실로 있었던 인물임을 깨닫고 진짜 그가 살았던, 정겨운 그 풍경을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 카즈야를 죽이고 소녀를 납치한 범인을 찾아내려는 나미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범인은 미키 슌이라는 필명의 동화작가이다. 암흑동화 시리즈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첫 이야기가 안구에 관한 이야기. 말을 할수 있는 까마귀가 눈이 멀은 한 소녀를 위해 타인의 안구를 적출해서 소녀에게 선물하는 내용이다.
소녀는 그 안구를 끼고 나미처럼 그 사람이 생전 살았던 풍경을 보게 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알록달록한 색채와 행복한 기억에 소녀는 기뻐하고, 까마귀도 소녀가 더 기뻐하는 모습이 보고싶어져 더 많은 인간들의 눈알을 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런 까마귀를 죽이려 하여 까마귀는 수많이 다치고 눈알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그래도 사랑하는 소녀를 위해 애써 땅에 묻으려 하는 여자시체의 안구를 찾아 선물한다. 하지만 그 여자는 깊은 절망으로 죽었기에 소녀도 같은 절망을 체험하고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다가 죽어버린다.
범인에겐 판타지적 능력이 있다.
그가 죽인 인물은 죽지 않는다는 것. 신의 능력이랄까ㅋㅋㅋ
팔다리를 자르면 보통 고통과 출혈로 죽게 된다. 하지만 범인이 상처입히면 이상하게 출혈도 없고 아프지도 않다. 뇌가 파괴되거나 심장이 망가지면 죽지만, 그 외에 내장을 집어파헤쳐도 팔다리를 이상하게 꺾어서 묶어버려도 상대는 죽지 않고 아프지 않다. 오히려 범인이 상처를 낸 부분에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표현을 한다ㅋㅋ 더욱더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고. 그래서 범인에게 허리를 잘리고, 내장을 집어헤치고, 팔다리를 잘리고, 난도질을 해도 피해자는 전혀 공포를 느끼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그저 그런 그를 인정하게 된다 한다.ㅋㅋ 왜그런지는 끝까지 설명해주지 않으며 그냥 태어날때부터 그런 특수 능력자였다 한다. 의사를 했으면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을테니 절대신이 되었겠구만.ㅋㅋㅋㅋ
그런 그가 사람을 죽인 이유도 별거 없다. 그냥 호기심으로 그랬댄다. 이 사람 여길 잘라버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고. 호기심으로 몸속 장기를 파헤쳐서 묶던가 몸 여기저기를 커다란 못으로 박아놓거나 했댄다. 그래서 죽으면 뭐 어쩔수 없고, 살아있으면 귀찮지 않는한 그냥 놔뒀댄다.ㅋㅋ 그에 대한 죄악감은 전혀 없으며 그저 죽인게 발각되서 조사받는게 귀찮을 뿐이다.
반전은 범인의 정체이다
책에서 나미는 당연히 범인은 소녀가 납치당해있는 저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 꽤 후반까지 이 방식으로 접근하기에 독자도 범인은 시오자키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찾아낸 지하실로 가는 계단 아래에서 손발이 잘린 히토미를 발견하고 그녀가 [까마귀를 보았냐] 라고 언급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진다. 범인 미키 슌의 정체는 까마귀 액세사리를 단 스미다였다.
독자에게 범인의 정체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 나미와 독자가 [무조건 범인은 저택의 주인이다] 라고 생각하게 했고, 그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범인 시점의 이야기]의 시간축을 헷갈리게 했다.. 결국 히토미가 [까마귀를 보았냐]고 언급하기 전까지 스미다가 범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 물론 까마귀 액세사리 봤을때 흠?? 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흐름이 시오자키가 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ㅋㅋㅋ
그에게서 도망치려다가 배를 찔리고 그대로 스미다가 배 안에 손을 집어넣어 나미의 내장을 빼낸다. 나미는 내장을 질질 흘리고 발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면서도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카즈야가 죽기전 남기고 간 드라이버로 스미다의 왼쪽 눈을 찔러 그를 죽인다. 그의 특수한 힘으로 나미는 내장을 흘려도 죽지 않았고 본능적으로 그 내장을 자기 뱃속으로 다시 집어넣는다.ㅎㅎ
사건은 엽기살인사건으로 밝혀지고 히토미가 팔다리가 잘려도 1년이상 살아남았다는 이유나 그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스미다가 사오리를 위해 꺾어온 꽃인데 아직도 시들지 않는다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GOTH때처럼 범인은 여전히 엽기적 행각을 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이 없으며 담담하다. 게다가 사건을 일으킨 어두운 배경따위도 없다. 그나마 사오리라는 존재가 그가 그나마 인간적이었다는 모습을 잠시 느낄수 있을 뿐.
나미는 그 사건 이후로 점점 [나미]의 기억을 되찾는다.
다시 기억을 찾는다면 [나]는 없어지는게 아닌가 두려워하던 기억이 없던 시절의 나미.
하지만 기억은 거부감 없이 조금씩 기억이 없는 그녀를 감싸고, 어느새인가 나미는 예전의 활발하고 피아노도 잘치는 팔방미인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왼쪽눈의 기억이나 자신이 경험한 사건, 사오리를 잊은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씩 변화한 것이다. 마지막에 나미는 다시 왼쪽 눈으로 꿈을 꾼다. 하지만 그것은 카즈야의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잃은 [나]의 것이다. 기억을 찾은 지금의 [나미]도 기억을 잃었을때의 [나]를 다른사람이라고 인정한다. 그런 그녀의 수많은 고통과 용기를 알고 있다.
[절대 잊지 않을거야. 내가 아는 누구보다 강하게 살았던 너를 언제까지나 기억할거야] 라며 끝을 맺는다.